케이프 타운 CAPE TOWN

배후에 테이블산(1,086m)과 라이온즈헤드가 솟아 있으며 테이블만(灣)에 면하는 천연의 양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소재지로서 행정부가 있는 츠와니(프레토리아), 사법부가 있는 블룸폰테인과
더불어 입법수도의 지위를 나누어 맡고 있다. 기후는 온대의 지중해성기후로 1월 평균기온 20.3℃,
7월 평균기온 11.6℃이며, 연강수량 526mm로 겨울인 5~8월에 비가 많다.
인구는 300만으로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남극 관측의 보급기지로서도 알려졌고 조선·기계·냉장·농수산물 가공·제분·제과·가구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상업·금융업도 활발하다. 백인 전용으로 세운 케이프타운대학(1829),
유색인 전용으로 세운 서(西)케이프대학(1960)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학교, 박물관·미술관·
도서관·식물원·동물원 등이 있다. 정비된 항만시설이 있는 외에 항공로·철도·도로 등의 기점을
이루는 교통상의 요지로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유럽에 동양의 향료를 운항하는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에 물자와 식품을 공급하기 위하여
테이블 베이에 1652년 네델란드인들이 정착한 것이 오늘날 케이프타운의 시초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비롯하여 미술관, 도서관, 동물원,
교회, 고성, 케이프타운 역 등 명소를 비롯하여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의 국제적 수준에 손색이
없는 서비스는 아프리카 속의 유럽임을 실감케 한다.

역사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인도양으로의 진입을 위해 케이프타운에 보급기지를 설치함으로써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도시가 설립되기 전까지 이곳에는 산족과 코이코이족이
살고 있었으나 유럽인이 진출함으로써 점차 자리를 잃고 내륙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는 마다가스카르, 인디아, 세실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노예를 수입하여 노동력으로 사용하였고, 이로 인해 케이프타운은 여러 인종이
섞이게 되었다.


18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힘이 약해지며 영국이 케이프타운을 식민지화 하였으나 1803년
네덜란드에게 다시 돌려주었다가 3년 후인 1806년 영국의 식민지로 재점령하기에 이른다.
1814년에는 영국령 케이프로 정식으로 편입하게 된다.


1820년대에 영국인들의 이주가 많아짐으로 인해 네덜란드인과 영국인간에 불화가 조금씩
생겨나게 되고 1834년 영국이 노예제를 폐지함으로 네덜란드인들은 케이프를 떠나 내륙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를 대이주(Great Trek)이라 부른다.


1948년 네덜란드계 아프리카인인 보어인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N.P)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시작되고 케이프타운 또한 그 가운데에서 인종간의 분리를 주도하게 된다.
1990년 2월 11일 넬슨만델라가 수감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면서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시청 앞에서 석방 후 첫 연설을 하게 된다. 이 후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면서 점차 많은
관광객들이 케이프타운에 몰려들게 되었고 현재는 아프리카의 유럽으로 불리고 있다.

[글 발췌 - '아프리카 가자고'클럽(http://club.cyworld.com/africagazago)-남부 아프리카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 북